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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호/ 2021. 06.

전문가칼럼

지구를 살릴 수 있는 두 번째 기회

강원대학교 산림과학부 교수 정은주

갑자기 뜨거워진 날씨처럼 우리 국민이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이란 주제에 급격한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신문에서도 구석쯤에나 볼 수 있었던 기사들이 1면에 등장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실 이전에도 기후변화에 관한 얘기는 이미 매일매일 등장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겨울이 따뜻해 병충해 피해가 늘었다던가 또 전에 없던 비가 내려 산사태가 났다 등의 뉴스였다. 다만 인간이 피해를 본다는 초점 때문에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라기보다 그저 사건, 사고 같은 사회 뉴스로 착각했을 뿐이다. 그렇다. 이것은 우리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에 있는 모든 생물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야말로 대사건이다. 이런 홍수나 산사태 같은 직접적인 사건이 일어난 경위를 쫓다 보면 그 원인에 바로 우리 인간이 등장한다. 부인하고 싶겠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모두 그 원인을 제공했었고 지금도 그렇다.

지난 몇 년 날씨가 조금 변했다고 기후변화라고 할 수 있을까? 1988년 나사의 과학자 제임스 한센이 지구의 온실효과에 대한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을 때 만해도 대부분 많은 사람이 기후변화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특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인식이 중요했는데 당장 이익이 없는 일에 저들이 관심을 가질 리 만무했다. 기후변화를 늦출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를 놓쳤다. 기후라는 것은 오랫동안 날씨의 패턴을 말하는데 짧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어떤 세대에 겪는 변화 정도로 치부하였다. 그러나 극지방의 빙하가 녹고 태풍이 몰아치니 이제는 생존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이후 2000년대가 되어서 많은 과학자와 정치가, 미디어에서 ‘기후위기’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하며 인식의 변화가 생겼다.

먼저 기후변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과학적으로 기후변화의 원인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증가와 이로 인한 기온상승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구 45억 역사 내내 온도는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였고 그 패턴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의 농도 변화와 함께 변화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겨우 0.02~0.03%만을 차지하는데 이 적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지구를 담요처럼 덮어 온도를 올리고 있었다. 위의 수치는 1880년대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농도였고 현재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0.04% 이상으로 올라가 있다. 그러면 온도는 얼마나 올라갔을까? 지난 백여 년 동안 평균온도가 0.8도가 올라갔다고 한다. 너무나 미미해서 무시하고 싶겠지만 지구 역사상 평균기온이 1도 올라가는 데 걸린 시간은 최소 천년에서 사천 년 정도 걸린 적이 있었고, 최근 과거 1만 년 동안 1도 이상의 변화는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최근 온도상승 폭은 최소 10배에서 100배 이상 빠른 속도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변화를 더 크게 느끼는 이유는 한반도는 세계 평균의 두 배인 1.7도가 올랐다고 한다. 아직도 이 온도의 느낌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우리나라 평균기온으로 보았을 때 춘천(12.3도)의 기후가 대전(14도)의 기후만큼 따뜻해졌다고 보면 된다.

우리처럼 긴 겨울을 지내야 하는 지방의 사람들은 기후변화로 추운 겨울이 짧아지니 난방비도 줄이고, 농사도 이모작을 하고, 풍성한 열대과일도 키울 수 있으니 오히려 좋아지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우리 곁에 오랫동안 함께 해 왔던 풀, 나무, 동물들이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온대의 생물은 점차 밀려 차가운 곳으로 올라가고 적도 같은 가장 더웠던 곳의 생물들은 뜨거워진 환경을 견디지 못해 없어지고 찬 곳에 살던 생물들은 차가운 곳이 없어져 결국 지구에서 사라지게 된다. 기후변화 때문에 생물다양성이 줄어드는 과정이다. 그나마 동물은 철새처럼 적당한 곳을 찾아 이동이라도 한다. 발이 없는 식물은 뿌리내린 곳에서 그 모든 변화를 감내해야 한다. 잘 이겨내면 살고 그렇지 못하면 사라지는 것이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이전에도 지구는 빙하기부터 온난화 시기가 있었기에 생물들은 이에 맞춰 생존하도록 진화해왔다. 그러나 이번 기후변화가 위험한 것은 과속한다는 것이다. 생물이 적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기온상승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하는 생물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쯤에서 어떤 이는 이런 질문을 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알지도 못하고 밀접한 관계도 없는 그런 생물들이 왜 꼭 지구상에 존재해야 하는가? 왜 그것을 지켜야 하는가? 흔히 생물다양성을 사람들은 종 단위에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생물다양성은 여러 수준에서 다를 수 있다. 같은 종 내에서도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진 것 또한 생물다양성의 범주에 포함된다. 인류가 먹고 쓰는 농작물은 모두 숲이나 들에서 채취한 야생종들을 목적에 맞게 개량한 것들이다. 야생형은 양식으로 사용하기에 맛도 없고 양도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상점 매대에 올려져 있는 모든 농작물이 그러하다. 아주 소수의 품종만이 우리에게 선택되었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대규모로 재배한다. 이런 식물을 먹고 사는 동물이나 미생물들에게 이보다 좋은 천국은 없는 것이다. 농작물이 동물에게 뜯기고 온갖 미생물에 의한 병이 발생한다. 모든 식물이 같은 유전형을 가지고 있으니 피해를 안 입는 것이 없다. 우리 식량을 이들에게 빼앗길 수 없으니 인간은 농약이라는 무기를 사용한다. 이 무기사용은 몇 번은 성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들을 계속 이길 수는 없다. 우리는 또 다른 품종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새로운 유전자가 필요하다. 어디에서 구할 수 있겠는가? 답은 바로 생물다양성에서 찾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설명은 생물다양성을 지켜야 하는 이유 중 지극히 이기적인 그리고 인간 중심적인 설명이다.

지구상 모든 생물과 인류를 동등하게 놓고 본다면 인류는 그저 지구 생물권의 한 구성요소일 뿐이다.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녹색식물이 물질을 생산함으로써 지구 생명의 생태계가 시작된다. 초식동물, 육식동물의 영양단계를 지나 이를 분해하는 미생물까지 모두 각자 자기 위치에서 기능을 하는 것이 바로 균형 잡힌 생태계이다. 먹을 풀이 많다고 사슴이 욕심을 부려 더 많은 새끼를 낳다 보면 먹이양보다 더 많은 개체가 생기고 결국 사슴의 먹이는 고갈되고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우리 인류는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양만큼만 소비하고 서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생태계는 안정된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행동을 되돌아보자. 필요 이상의 자원을 캐내고 다른 생물들의 영역을 파괴하고 있지 않은가. 생태계 사슬을 끊어내는 일을 아무 죄의식 없이 하고 있다. 그 총체적 결과가 바로 기후변화이며 각종 재해가 되어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 것이다.

2020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자그마한 미생물에 인간이 공격을 당하는 사이 지구 생태계는 아주 짧은 달콤한 휴식 시간을 가졌었다. 멸종위기에 몰렸던 바다거북이 백사장에 알을 낳고 부화하며, 기후변화 주범인 이산화탄소 증가가 다소 주춤한 것이다. 기후변화를 멈추기에 턱없이 부족하지만 말이다. 덕분에 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을 만끽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 위대한 인간의 과학기술로 이 바이러스를 극복하면서 평상의 시간을 시작하려고 하는 지금 지구 생태계의 휴식기는 끝이 나고 있다.

다행히 십 수 년 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 지도자들이 탄소배출을 줄이자는 약속을 했다. 2050 탄소중립의 탄생이다. 산업혁명 이전으로 되돌릴 순 없어도 적어도 2010년 때 정도만이라도 이산화탄소 농도를 유지하기 위해 배출량을 줄이자는 것이다. 기한은 2050년까지이다. 그래야 온도상승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인류생존을 위해 사활을 걸고 달성해야 하는 목표이다. 설령 탄소중립을 달성하더라도 그사이 우리는 많은 생물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구의 모든 생물과 생태계를 염려하는 박애주의자의 마음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우리 인류 후손의 생존을 위해서 지켜야 할 약속이다. 국가적인 정책이 수립되었지만, 우리 국민 개개인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아직 감이 잡히질 않는다. 이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지구를 살릴 이 기회를 다시 놓치지 말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