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 2020. 05

강원도의회 정책Letter

정책제언

일과 일자리 문제에 대한 고민과 해법을 관통하는 핵심어는 ‘4차 산업혁명’이다

기고자신자은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세계은행과 OECD는 연례보고서인 World Development Report와 OECD Employment Outlook의 2019년 주제를 ‘The Changing Nature of Work’ 그리고 ‘The Future of Work’로 정하고 4차 산업혁명이 상징하는 획기적이고 급속한 기술발전이 인간의 일과 일자리, 노동시장에 어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그 창조적 파괴의 과정을 조망한 바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가 처음 던져졌을 때는, 일자리 없는 미래(Jobless Future)에 대한 불안과 분노의 정서가 압도적이었고, 실제로 인공지능 로봇, 빅데이터와 디지털기술이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는 영역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무인’화는 이제 일상의 일부로 익숙하게 자리 잡았다. 그러나, 2020년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4차 산업혁명은 더이상 공포의 변수가 아니라 거대하고 불가항력적인 도약의 기회, 개인, 기업,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행운의 상수이다. 이전의 산업혁명들이 그러했듯 4차 산업혁명은 일하는 방식과 일자리 지형을 송두리째 바꾸어놓는 중이고, 더 창의적으로 더 발 빠르게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고 우위를 선점해서 재편된 경제질서의 승자가 될 것인가가 사안의 핵심이 됐다.

세계화로 시작되고 기술혁신으로 가속화된 글로벌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의 특성에 대해서 OECD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먼저, 우려했던 대량실업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용률, 특히 여성과 고령층의 노동시장 참여가 개선됐다. 디지털기술 덕에 일하는 장소, 시간, 방식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어졌고, 노동시장 참여 경로와 기회가 확대됐다. 힘들고 위험한 일은 자동화됐다. 일자리의 질이 개선된 것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일자리, 더 좋은 일자리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불가피하게 파괴적 요소를 동반한다. 자동화의 영향으로 제조업 일자리는 줄어들고, 서비스 산업 일자리, 디지털 플랫폼에 기초한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가 부상한다. 저임금 저숙련 일자리와 고임금 고숙련 일자리로, 승자 기업과 한계기업으로 시장이 양분되고 노동시장 양극화, 소득격차가 확대된다. 중숙련 일자리와 중산층이 무너진다. 시장의 수요와 변화의 흐름에 발맞추어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끊임없이 습득하고 직장과 직업을 유연하게 크로스오버하는 역량과 교육훈련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저임금 일자리, 하향 취업, 구직포기, 결국 노동시장에서의 완전한 탈락만이 선택지로 남게 된다(OECD Employment Outlook, 2019).

우리나라의 노동시장과 일자리 문제는 이러한 큰 흐름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년여간 높은 저임금노동자 비중, 긴 근로시간, 높은 비정규직 비중, 그리고 노동시장 한계집단(청년, 여성, 노인)의 고용문제를 해결하고자,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정규직 전환이라는 3대 일자리 정책을 추진했다. 고용(창출, 촉진, 유지, 안정)장려금, 노인일자리 사업과 같은 과감한 재정사업으로 일할 기회를 늘리고, 4대 보험 가입과 실업급여를 확대해서 고용에 기반한 사회안전망을 공고히 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일자리 정부를 자처하며 대선공약과 국정과제에서 선언했던 대로다. 갈등과 논란이 뒤따랐고 정책과정이 험난했기에 일자리 성적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지대했다. 지난 1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취업자 수, 고용률, 실업률이 개선됐다. 여성과 고령층의 고용이 늘어났고 소득격차가 줄어들었다. 고용시장의 양적 질적 호조세가 뚜렷하다며 정부는 사뭇 안도와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런데,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면, 정부가 직접 고용주로서, 혹은 재정투입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일자리, 즉 공공부문, 60세 이상 고령층 일자리, 단시간 일자리들이 전체 일자리 수 증가를 견인했다. 반면, 전일제 일자리와 주력산업인 제조업 일자리는 줄었다. 고용창출력이 높은 도 소매와 숙박음식점업 일자리, 그리고 경제활동인구의 허리인 40대의 일자리는 감소했다. 고용원을 둔 자영업자는 줄고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늘었다.

임금 수준과 근로시간, 고용형태, 채용방식에 대한 정부의 세세한 가이드라인이, 노동시장과 민간(기업)에 의미하는 바는 고용비용의 증가다. 고용비용이 증가해도 총수요가 확장되면 고용이 늘어날 수 있으련만,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2%대의 저성장 기조, 인구감소와 같은 여건하에서 기업은 고용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저금리 정책으로 자본비용이 낮고 기술혁신이 노동을 대체할 새로운 생산수단을 적극 제공해주므로 노동수요의 가격탄력성은 더욱 커진다

“민간, 시장이 일자리를 만든다”는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자 정부가 모든 권한과 재원을 동원해서 고군분투한 바는 인정하더라도,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결국 기업”이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겸허하고 냉철한 자성이 필요하다. 푯대를 제시하고 끌고 가기보다는 경청하고 뒤에서 밀어주는데 더 유능한 정부가 돼야 한다. 알려진 문제에 알려진 해법으로 응수하는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일자리 문제를 바라보는 창의적이고 참신한 시선과 과감한 전략전술이 필요하다.

첫째, 민간과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임금을 지불하는 주체이며 국민소득과 사회안전망을 떠받치는 기둥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신명나게 만들어낼 수 있도록 국정과제로 이미 구상해 놓은 일들부터 차근히 추진해나가면 좋겠다. 신성장-유망서비스 산업 육성,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서비스 업종 집중 지원(국정과제 20번). 소상공인-자영업자 역량강화(국정과제 28번, 일자리 10만개). ICT 투자와 산업육성(국정과제 33번, 일자리 26만개). 고부가가치 미래형 신산업의 발굴과 육성. 주력산업 경쟁력 제고 및 수출기업화 지원(국정과제 38번, 일자리 5만개). 혁신창업 활성화(국정과제 39번, 창업자 6만명). 중소벤처 집중 육성(국정과제 40번, 일자리 7만개). 명시된 일자리만 54만개이고 실제 고용영향 파급력은 이를 훨씬 상회할 것이다. 2020년부터는 이런 일자리들이 늘어나야 한다. 정부는 최대 고용주 역할을 내려놓고 전체 일자리의 95%를 책임지는 민간과 기업이, 창조와 혁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서, 변화하는 경제질서 패러다임을 주도하고 좋은 일자리를 양산하는 선순환이 일어나도록 촉매제가 돼 주어야 한다. 친기업 정책이 일자리 정책이다.

둘째, 기존 산업의 혁신과 미래 신산업의 발전은 진화의 과정과도 같아서, 경제 생태계를 교란하고 격한 경쟁과 도태를 불가피하게 수반한다. 디지털플랫폼에 기반한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내는 일자리는 기존 산업에 위협이 되기도 하고 기존의 제도 안에 잘 품어지지 않는 낯선 종이다. 택시와 타다 사례를 참고해보자. 타다는 택시의 경쟁자로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다. 택시와 차별된 장점이 있었고 수요가 부응했다. 고용기사 9,000명, 회원 125만명까지 성장했다. 그러나 현재 타다 서비스는 불법, 대표는 「여객자동차운송사업법」 위반으로 기소된 상태다. 타다가 미래형 혁신 산업인지,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유망 서비스 산업으로서의 잠재성을 제대로 타진해 볼 새도 없었다. 공유경제, 혁신과 창업, 미래 신산업에 대한 열망은 높으나, 새롭기 때문에 낯설고 불편할 수 있는 변화를 아우를 용기와 준비가 부족했다는 아쉬움을 짙게 남긴 사건이다. 더 많은 부문에서 타다가 등장하고 택시가 긴장하는 상황들이 펼쳐질 것이다. 타다 때문에 택시가 발전하고 택시가 디딤돌이 되어 타다가 융성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새로운 게임의 룰을 구축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규제개혁이 일자리 정책인 이유다.

셋째, 새로운 일자리,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일자리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수요와 공급의 매칭이 이루어질 때 고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패러다임 하에서 창출된 일자리는 기술지향적인 특성을 띤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높고 이들이 좋은 일자리, 미래시대의 일자리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단순 사무직이나 제조업 종사자가 빅데이터 전문가로 변신하는 것이 용이하다면, 일자리가 사라지는 부문에서 발생하는 실업을 일자리가 생겨나는 부문에서의 고용확대로 중화시킬 수 있고, 신산업은 유능한 인력에 힘입어 더욱 성장 발전할 수 있다. 이에, 아직 시장에 진입하지 않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는 교육개혁이 시급하고 현세대에게는 재교육훈련, 유연한 이직과 업종 전환의 기회가 절실하다. 12월 20일, 프랑스의 에콜 42를 벤치마킹한 ‘42서울’ 개소식이 있었다. 문제해결형 팀프로젝트 방식으로 소프트웨어 인재를 양성하며 교수, 교재가 없는 혁신적인 교육기관으로, 학비가 없고 월 생활비가 지원된다. 250명 선발에 1만명이 넘게 지원했다

기존의 재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더 많은 더 다양한 한국형 에콜42가 필요하다. 시장이 요구하는 기술과 지식의 습득, 혁신과 창의의 역량 강화가 공교육과 재교육훈련의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알을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도전이 일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가능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정부가 사람에 대한 투자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교육훈련 투자가 일자리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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